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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종교개혁이 음악에 미친 영향, 루터교, 가톨릭 음악

by 캣우먼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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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

 종교 개혁은 역사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끼친 사건입니다. 이 여파는 당대 음악에도 상당한 변화를 주게 됩니다. 종교 개혁이 음악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루터교의 음악과 가톨릭 음악의 개혁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교 개혁이 음악에 미친 영향

 16세기에 시작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특히 유럽 지역에서 그 시대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이었고, 기독교의 분리된 분파로서 개신교의 설립을 이끌게 됩니다. 종교적 교리의 이러한 변화는 또한 종교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의 변화를 이끌게 됩니다. 종교 개혁 기간 동안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종교 음악에서 사용되는 주요 언어가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개신교 운동은 토속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작곡가들은 독일어, 영어, 그리고 그들의 신도들이 사용하는 다른 언어들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 개혁은 또한 종교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 스타일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향상시키기 위해 모테트와 미사와 같은 다성음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음악은 음악적 반주보다는 단순함을 강조하고 가사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찬송가와 합창과 같은 더 단순한 음악 형태의 개발로 이어졌는데, 이는 회중들이 노래하고 이해하기 더 쉬웠습니다. 종교개혁은 세속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신교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개인적인 성찰과 오락을 위한 음악의 사용을 장려했습니다. 이것은 개신교 찬송가와 비슷한, 새로운 형태의 세속 음악의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종교개혁은 당시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쳐 새로운 음악 형태의 발전과 언어의 사용, 단순함과 개인적인 표현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루터교의 음악

 루터교 음악은 16세기에 시작된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에서 만들어지고 공연된 음악을 말합니다. 루터교회는 가장 영향력 있는 개신교 교회 중 하나였으며 개신교 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루터교 음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토착 언어의 사용, 단순성, 회중의 참여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예배에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라틴어보다 토착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합창은 루터교 신앙의 중심 교리에 초점을 맞춘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로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회중들이 참여하기 쉽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합창은 루터교 예배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고 종종 오르간을 동반했습니다. 칸타타는 합창 선율과 암송, 아리아, 그리고 다른 음악 형태를 결합한 다악장 작품이었습니다. 그들은 루터교 예배에서 그 날의 설교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루터교 음악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루터교회를 위해 수백 개의 칸타타와 다른 작품들을 썼는데, 그 중 많은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공연되고 있습니다. 다른 주목할 만한 루터교 작곡가로는 독일어로 종교적 작품을 쓴 하인리히 쉬츠가 있으며, 많은 오르간 작품과 종교적 칸타타를 쓴 디트리히 북스테후드가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루터교 음악은 프로테스탄트 음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음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토착 언어의 사용, 단순성, 회중 참여는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교회와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입니다.

 

가톨릭 음악의 개혁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는 큰 변화를 겪었고, 그 결과 전례음악의 중요성이 새롭게 강조되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 음악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545년에서 1563년에 걸쳐 열린 이 공의회는 가톨릭의 중요한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공의회는 음악이 가톨릭 전례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당시 사용되고 있던 음악 중 일부가 부적절하거나 질이 좋지 않다는 것도 인정했습니다. 1555년 교황 마르첼루스 2세는 지나친 세속 선율의 사용, 시끄러운 악기 사용, 가사 전달이 불분명한 복잡한 다성음악 사용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던 4000곡이 넘는 부속가 중 단 4개만을 허용했으며, 트로프들을 전면 퇴출시켰습니다. 가톨릭 음악의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은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팔레스트리나' 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다성 음악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교황 파울루스 4세가 팔레스트리나의 6성부 미사곡을 듣고 그 계획을 철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반종교 개혁 기간 동안 가톨릭 교회를 위한 음악을 작곡한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이상에 부합합니다. 도약이 많지 않고 부드럽게 진행하는 선율, 불협화음의 절제된 사용, 세심한 가사 붙이기가 그 특징입니다. 그의 문체는 맑고 단순하며, 텍스트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충실했습니다. 또한 음악적으로 정교하면서도 일반인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가톨릭 교회의 요구에도 부합했습니다. 그 당시 팔레스트리나의 작품들은 매우 영향력이 컸고, 그의 스타일은 이후 수 세기 동안 가톨릭 전례 음악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라질 뻔한 다성 음악을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오늘날 가톨릭 교회음악의 구세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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